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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작성일 25-05-19 12:30 조회 52회 댓글 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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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부산에서 아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에게 검찰이 징역 13년을 구형했다.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19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결심 공판을 열었다.이날 공판에는 A씨의 친동생 B씨가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B씨는 "범행 이전 A씨는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얘기했었다. 그 당시 형이 굉장히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생각했었다"면서 "범행 이후 찾아왔을 때 A씨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며 아내를 부탁한다고 했었고, 저는 자수를 권유했다. 이후 A씨는 자수를 하겠다고 나갔다"고 말했다.이어 "조카가 그렇게 됐기 때문에 죄를 감형해달라고 얘기하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하나뿐인 형을 위해 선처를 구한다"고 덧붙였다.이날 검찰은 A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검찰은 "이 사건 범행은 매우 중하지만 A씨가 범행을 계속 인정하고 있고, 가족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구형했다"고 밝혔다.A씨 측 변호인은 "A씨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평생 속죄하며 살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면서 "남아 있는 가족들이 A씨가 아들의 치료를 위해 들인 노력과 정상을 알고 있기에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제반 사정을 참작해 우리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피고인에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했다A씨는 최후 진술에서 "과거로 돌아가서 아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평생 속죄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재판부는 A씨에 대한 선고기일을 다음 달 11일로 지정했다.A씨는 지난 2월17일 오후 5시8분께 금정구의 한 길거리에서 아들인 C(20대)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범행 이후 A씨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며 112에 신고한 뒤 도주했고, 경찰은 긴급 수배령을 내리고 현장 폐쇄회로(CC)TV영상 분석과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추적을 벌여 같은 날 오후 6시45분께 한국실이 지난 17일 새롭게 단장해 '유길준 한국실'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이번 한국실은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자체 예산을 활용해 232㎡ 규모로 개편됐다. 한국실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은 현존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자 한국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한 최초의 미국 박물관이다. 특히 19세기 조선의 개항 이후 한국과 미국을 왕래한 인적 교류를 기반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속 수집해 왔다.미국 사절단인 보빙사의 일원이자 한국 최초의 유학생으로 '서유견문'을 저술한 유길준(1856-1914)의 이름이 새 한국실 이름이 된 것은 유길준과 당시 피바디과학관(현 피바디박물관 전신) 에드워드 모스 관장의 인연에서 기인한다. 유길준은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온 후 모스 관장의 권유로 미국에 남아 세일럼에서 약 1년간 유학했는데, 이때 유길준은 모스 관장이 1884년 고종의 외교 고문인 독일인 묄렌도르프(1848~1901)를 통해 구입한 한국 유물 225점에 대해 자문해준 바 있다. 재개관한 한국실에서는 귀국할 때 유길준이 박물관에 기증한 옷과 소장품, 그리고 돌아가는 배편에서 모스에게 쓴 편지 등을 볼 수 있다.피바디에섹스박물관 한국실에는 19세기 일상용품부터 21세기 현대미술 작품까지 망라됐다. 한국과 미국의 외교관, 선교사, 지식인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전시품 가운데 보빙사의 일원이었고,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저자인 퍼시벨 로웰(Percival Lowell)이 선물 받은 모자는 한국의 전통적인 재료인 말총으로 만든 서양 신사 모자다. 또한 선교사 마벨 폴링(1870~1909)이 조선 내무부로부터 받은 특별한 형태의 육각 은제함에는 '폴링 부인'이라는 한글 표기가 돼 있다.이번 전시에서는 1896년부터 1900년 초까지 주미 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 가족사진이 최초로 공개된다. 이범진은 주미공사로 부임해 워싱턴에서 3년 반 정도 체류하는 동안 모건과 깊이 교류하였는데 마침 한국으로 발령받은 모건은 이범진의 부탁으로 1899년 향수병에 걸린 이범진 아내의 귀국길에 동행하기도 하였다. 사진 속에는 이범진의 아내와 장남 이기종, 그리고 훗날 1907년 헤이그 특사로 활약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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